한옥마을 - 북촌 한옥마을의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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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원서동 9번지
고희동은 1886년 태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다.
1908년 한국인 최초의 미술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동경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후 1915년 귀국하여 휘문, 보성, 중동 등의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다.
해방 직후인 1948년 한민당 상임위원, 1955년 대한민국미술 전람회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친일에 대한 그의 발자취와 화가로서의 업적, 그리고 우리 건축역사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1965년 그가 죽기전 6년을 제외하고는 41년간 살았기에 그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고희동 가옥은 160여 평의 단층집으로 근대 한국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며 서양화가인 고희동이 고희동이 직접 개량한옥으로 밑그림을 그려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일본에서 귀국한 1918년 원서동의 대지를 매입하고 유학 당시 경험했던 서양문화에 접목한 일본주거의 장점을 우리 한옥에 보완하여 실용적인 절충형 한옥을 직접 설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는 한옥의 모양, 내부는 양식과 일본식이 적당히 섞인 방법으로 지었다. 50여 평으로 외부는 붉은 벽돌로 담을 쌓았으며, 1910년대 지어진 우리 주택의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재 많은 부분이 망가져 있다.
따라서 이 가옥은 근대 초기 우리나라 도시주거형식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공간구조를 보여 주고 있고, 서울 사대문 안 주거밀집지역의 개화기, 근대 시기의 도심지 한옥의 주거형태 변화를 파악하는 데 주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학계의 관심을 끌어 왔다.
우리나라 서양화가 1호 고희동이 살았던 원서동 16번지에는 현재 주인이 없다.
(주)한샘이 2002년 고희동 가와 일대의 한옥을 사들여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연구소 건립계획이 북촌이 담고 있는 문화적 흔적을 멸실할 우려가 있어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하며, 서울시가 빠른 시일 내에 고희동 가옥 부지를 매입하고 보존계획을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문화계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힘입어 4월 21일 서울시는 12억원을 들여 원서동에 위치한 고희동 가옥 4채를 매입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