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자료실
가회동 현상: 보존의 철학과 전략
Gahwoi Dong Phenomenon: Philosophy and Strategy for Its Preservation
이 상 헌(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가회동은 예로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하여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전통주거지역으로 원래 관직이 있는 고관대작이나 왕족의 거주지로 유명했고,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으로 북촌으로 불리었다. 이 지역이 고밀화된 한옥 도시주거로 바뀐 것은 1930년대이다. 하여간 이 가회동 일대에는 크고 작은 한옥들이 꽤 많았고, 다른 동네 한옥들이 쉽게 양식주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도 신식주택들이 들어서지 못했다. 이 보수적이고 한국적인 지역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1976년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강북지역 중상층 주민들이 강남의 새 터로 옮겨가는 대이동이 산사태처럼 일어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가회동 지역사회의 정신적 받침목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1)
1976. 경기고등학교 이전
1977 휘문고등학교 이전-현대건설 사옥
1983년 4종 미관지구(가회동, 계동, 재동, 화동 소격동, 사간동 송현동, 안국동 원서동)
1985년 도시설계(한양대학교)
1988 전통문화지대 계획수립 몇 개의 단계적 지구지정
1990 일부 지구를 제외한 규제완화
1991 10미터 이하 경사지붕 그리고 심의를 조건으로 전부 완화
2000 역사문화미관지구(현 한옥 863동 39%)
2000. 10.30 북촌가꾸기 관련 서울시 건축조례
가회동 보존의 사회적 담론
개발의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대 초 가회동으로 대표되는 서울의 유서 깊은 주거지인 북촌은 4종 미관지구인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어 한옥이외의 어떠한 신축이나 개수 등 원형에 손을 대는 일이 금지되었다. 그렇다고 개인재산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문화재와 유사한 보존의 대상으로써 강력한 법적 규제에 의해 개발이 억제되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북촌이 보존의 대상으로 떠오른 이유가 사회적으로 분명히 정의되지는 않았다. 강남 개발로 가속화된 개발의 열기 속에서 서울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역사적 흔적이 상실될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자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북한과의 정통성 대결에서 우위를 내주지 않기 위한 국수적 전통주의의 산물이었는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 없이 원형복귀를 전제로 한 북촌에 대한 보존대책은 근본적 결함이 있었다. 대책 없는 규제는 이 후 사유재산권 침해에 대한 주민의 불만과 북촌의 점진적 슬럼화를 유발시켰고, 결국은 이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북촌의 한옥은 하나 둘 씩 철거되어 다세대 연립주택으로 재건축되고 작은 필지와 골목은 사라져 북촌은 조금씩 서울의 여는 주택지와 다름없는 난 개발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처음부터 가회동과 북촌의 보존과 그 방법에 대한 개념이 분명히 정립되지 않았었던 데 기인한다.
북촌의 변화로 인한 유서 깊은 전통주거지의 상실에 대해 걱정하는 일부의 건축가들은 나름대로 북촌을 보존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을 해왔고 최근에는 서울시도 전보다 훨씬 전향적인 방법으로 북촌을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시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주민이 원하는 한옥은 매입하여 활용하고 계속 살 사람은 개 보수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전향적이어서 지금까지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다싶을 정도이다.2) 그러나 이러한 서울시의 노력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주민의 불만은 애초에 서울시가 가회동을 대책 없는 문화재 보존 식의 잘못된 행정을 한 당연한 결과로서 이에 대한 불신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3)
그러나 최근의 가회동 보존을 위한 전향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회동과 북촌의 보존에 대한 철학적 입장과 보존의 방법은 정리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막연히 북촌을 보존해야 한다는 당위로부터 출발하여 이것을 관철하기 위한 기술적 대책을 수립하는데 급급하고 있거나, 아직 남아있는 달동네의 정취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사한 종류의 북촌에 대한 낭만적 태도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러나 가회동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보존의 철학과 방법에 대한 이론적 정리와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 북촌의 보존에 대한 분명한 철학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채 이런 저런 기술적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점에서 현재 진행되는 방식으로 가회동과 북촌이 제대로 보존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며 또 그런 보존의 방식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가회동 보존의 논리는 근본적으로 가회동의 가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가회동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정리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보존의 방법과 전략도 수립될 수 있다. 유명한 예술사학자인 리글(Alois Riegl)이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토 내에 있는 유적 보존을 위한 입법청원을 위해 역사적 기념물과 유적의 보존 가치에 대한 개념을 정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4) 이러한 작업이 필요했던 이유는 본질적으로 보존이라는 것이 근대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18세기까지는 과거와 현재는 섞여있었다. 옛 것은 수리해서 썼고 전통은 현재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면서 재창조되어 왔다. 그러나 2-3백년전 고고학의 발전 이후 오래된 과거는 현재와 거리를 갖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옛것을 어떻게 보존 또는 복원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5) 특히 19세기말에 이르러 근대화의 과정이 가속화되면서 끊임없이 새것이 창조되는 현대사회에서 역사적 유적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그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문화를 가꾸고 유지하며 잘 살고 있었던 가회동이 1980년대 초 갑자기 보존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분명히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가회동 보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나 철학적 논쟁은 없었다. 보존의 당위에 대한 주민과의 합의조차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제 서울시에서 북촌을 보존하기 위해 매우 전향적인 제안을 하려는 마당이니 보존의 철학에 관한 논의로부터 시작함이 마땅하다. 어떠한 이유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존하려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 가회동을 보존하려는 것은 20년 전 우리가 취했던 가회동에 대한 맹목적 권위주의를 또 다시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가회동의 보존가치
우리에게 가회동의 가치는 무엇인가. 만일 가회동이 기념비적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면 가회동은 조금도 변형되지 않은 원래의 상태로 보존되어야 하다. 기념비적 문화재는 그 원형적 규범이 역사적 가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회동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가회동은 일제시대 지어진 도시형(개량) 한옥으로 구성된 집단 한옥지구이다. 개량한옥은 일제시대 민족자본에 의해 전통한옥이 도시화에 적응한 건축적 유형으로 매우 의미 있는 것이지만,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개개의 건축물이 기념성을 갖거나 미학적 규범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개개의 건축을 원상 보존하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회동의 개별 한옥이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가회동은 도시형 한옥이라는 건축적 유형이 독특한 골목의 구조와 함께 군락을 이룬 것으로 그 집합이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도시형 한옥의 군집과 도시 공간 조직을 포함하는 전체가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다면 가회동 지역 전체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원상보존 해야 마땅할 것이다. 나아가 퇴락한 한옥은 수리하고 없어진 한옥은 신축하여 끼워 넣음으로써 (언제를 기점으로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1970년대까지 이어져 오던 골목과 마당의 물리적 구조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사유재산인 생활공간을 이렇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며 이 비용을 감당할 만큼의 문화재적 가치를 가회동이 갖고 있다는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가회동의 가치는 개별 건축물보다 도시공간조직에 있으므로 그 공간조직과 스케일만 유지되면 한옥은 개발되어 없어지더라도 가회동은 보존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6) 그러나 가회동 골목의 스케일은 한옥의 처마와 외벽․담장이 만드는 3차원적 이미지다. 한옥의 물리적 구조물이 없는 공간의 스케일과 골목패턴만을 보존한다는 생각은 무의미하다. 이런 점에서 4. 3 그룹의 건축가들의 시도했던 작업은 가회동 보존을 위한 프로젝트라기보다는 가회동 전통주거를 해석한 새로운 집합주거 설계에 가깝다.7) 이러한 계획을 통해서 남는 것은 길, 골목, 마당이지만 그것은 가회동은 아니다. 가회동에서는 가회동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가회동의 가치는 그곳에 있는 건축물이나 도시공간조직의 문화재적 가치라기보다는 이 지역의 고유한 풍경이라는 주장이 있다.8)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대략 이것은 가회동의 특정한 구조물이나 공간의 가치라기보다는 그것이 이루는 집단적 정취이고 분위기(Aura)이며 문화라고 할 수 있다.9) 즉, 가회동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집단한옥지구가 이루는 옛스러움과 전통적인 고유한 풍경 때문이다. 좁은 곡몰길과 계단,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미로 그리고 촘촘히 엮여있는 한옥들의 지붕으로 구성된 가회동은 지금의 서울의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과거의 정취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속도로 새롭게 (재)개발되는 대 도시속에서 서울의 원형적 도시구조에 순응한 주거지로서의 전통적 풍경과 경관요소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가회동 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말하자면, 가회동의 풍경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지형에 순응하며 형성된 낮은 기와지붕과 골목 마당 등 가회동의 물리적 구조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문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내부적 변화의 수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회동의 풍경의 가치는 가회동이 원래 가지고 있는 가치라기보다는 가회동에 부여된 현재적 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도시의 거대함과 광활함과는 다른 공간적 정서를 담고 있는 가회동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등장하는 근대 대도시의 새로움과 구별되는 오랜 것의 정취이다. 즉 근대성에 의해 상실되어 가는 옛 원형의 정취이다. 말하자면 가회동 풍경은 영원한 규범적 가치가 아니라 우리시대가 가회동을 보는 예술적 가치이다.10)
리글은 이러한 가치(현대인이 갖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노화 가치(age value)로 정의하였다.11) 가회동의 풍경이 바로 이러한 시간성에 의한 가치라고 본다면, 원상보존은 그 의미가 약화된다. 시간의 경과에 의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퇴락, 시간의 흐름이 앗아간 한옥의 유용성, 현대의 새로움과의 거리가 바로 가회동의 가치이다. 그러므로 가회동의 한옥을 헐고 새로운 건축을 짖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회동 한옥의 문화재적 복원도 시간의 인덱스가 담긴 역사적 도큐멘트로서의 가회동의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즉, 이것은 가회동의 풍경을 지워버리고 가회동을 민속촌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글의 노후가치의 개념은 서양의 돌을 재료로 한 유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목조 한옥의 경우 복원은 분명히 로마유적의 복원과는 다른 점이 있다. 목조 전통건축에서 원래의 재료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약하다. 말하자면, 백년 전 서까래와 지금 새로 끼워넣은 석가래는 큰 차이가 없다. 동양의 목조건축의 철학은 서양의 돌 건축과 같은 재료의 영원성에 대한 열망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므로 시간의 순환적 개념의 의거하여 전통건축의 복원을 통한 보존에 대해 서양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목조 한옥의 특성에 따라 손질과 수선을 하면서 자연적 시간의 경과를 수용하는 점진적 퇴락에 의한 보존은 현재 우리의 미학적 근거를 이루는 근대성의 패러다임과는 맞지 않는다. 리글이 오래된 것의 가치를 말한 것은 쉼 없이 새것이 창조되는 우리시대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태도를 설명하기 위함이었지만, 그는 현대사회의 시간의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도시의 현장에서 목도되는 끊임없는 새로움의 추구, 그리고 그 시간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매달려 있는 도시의 폐허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오래된 것과의 낭만적 거리(distance)를 유지하지 못한다. 즉, 우리는 도시의 폐허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 새로 구축된 한옥 촌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또 하나의 새로움일 뿐이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고층건물이 들어서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에서의 미적 감성이며 우리사회의 근대성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 성격”이다.12)
가회동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은 사용가치에 있다. 리글의 노후 가치는 유적으로서의 가치이다. 그러나 북촌은 단순히 시간의 퇴락에 맡겨진 도심내의 유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활공간이다. 그래서 가회동은 노후 가치와 사용가치가 혼합되어 있는 특성을 갖는다. 사용가치를 갖는 도시의 어떠한 건축도 서울의 근대성이 가지고 있는 속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도시에 단층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지구를 문화재적 가치가 아닌 현재성 속에 녹아있는 공간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북촌이 그 동안 탐욕스러운 천민자본주의적 부동산 자본의 개발 압력에 버티면서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은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지금까지의 강력한 규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가회동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현실과 시간적 거리를 갖는 역사적 문화재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은 고궁이나 기념비적 유적지가 아닌 서울의 일상적 주거지이다. 그래서 가회동은 아주 독특한 지역이며 모순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모순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가회동의 규제를 풀어주어 현실의 개발논리를 수용하던지 충분한 보상과 지원을 통해 가회동의 원형을 문화재적으로 보존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이다. 전자는 가회동의 정서를 잃게 할 것이고 후자는 가회동을 과거의 가치를 표상하는 도심의 민속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회동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회동이 계속적 사용과 수선의 과정을 통해 자연적 시간의 연륜이 쌓이면서 그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철거와 재건축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우리 대도시의 시간의 속도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시간의 속도 속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바뀌고 변화한다. 중학교 때 지은 집이 대학 때 다세대가 되고 수년 있으면 또 다른 건물로 변한다. 콘크리트 아파트도 20년이 지나면 바로 재건축 하겠다고 줄을 서 있다. 가회동을 보존한다는 것은 이러한 개발의 시계바늘을 늦추는 일이다. 그러나 고궁이나 문화유적지와 같은 기념물이 아니면서 가회동에서만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겠다는 것은 실상 엄청난 과제이다.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시간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가회동 보존은 결국 우리시대의 시간성과의 싸움이다. 이것은 우리시대의 시간의 속도를 지배하는 근대성의 매커니즘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활용보존: 도심민속촌 vs. 도시생태학
가회동 보존의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서 현대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수리하여 살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를 위한 방안은 현실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가회동을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역사지구로 지정하여 보존하면서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활용보존은 우선 일상적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때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가회동 한옥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목조라는 한계로 인한 내구성과 단열 그리고 설비의 문제 때문에 상당한 개조를 하지 않고서는 현대적 생활을 수용하기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또 기존주택의 원상을 유지하는 개 보수를 통해 주택으로 활용하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협소하여 한계가 있다. 규모가 큰집이라면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15평 정도의 소규모로 한 가족이 살기에는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면서 단순히 개 보수 지원과 세제혜택만으로 이곳에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따라서 원상보존을 하려면 이곳을 역사지구로 지정하면서 특별한 용도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서울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인 것 같다. 서울시는 북촌을 단순히 문화재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그곳의 생활문화가 유지되도록 한다고 하지만, 서울시가 생각하는 주민 참여 방식의 형식은 이미 (매입하여 공방, 전시관, 전통찻집으로 활용한다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결국 다수의 주민은 한옥을 팔고 나갈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가회동을 도심내의 민속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화재의 활용보존이 아닌 자발적 문화에 바탕을 둔 살아있는 생활공간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가회동을 도시생태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13)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시대의 도시생태학은 이러한 도시의 발전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근대성의 엄청난 속도를 무시하고 도시생태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너무 소박한 발상이며,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방향의 도시생태학을 유도하려면 보다 치밀한 공공적 장치와 개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미국의 역사보존지구에서처럼 다양한 인센티브와, 세금혜택, 개발권을 허용하고 주차, 냉난방, 부엌, 위생 등을 개선하여, 경제적 이해와 현실적인 생활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이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또 앞서 지적했듯이 현대시회에서 소규모 목조 한옥이 가지고 있는 실용성의 한계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옥보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다. 주택과 도시의 건설을 부동산 자본의 논리에서 보는 것이 이미 고착화된 우리사회에서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결국 가회동을 순수하게 도시생태학적으로 접근하여 보존하려는 노력은 우리시대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획인지 모른다.
도시 생태학적 관점에서 가회동을 보존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한옥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최소한의 개 보수로 그 집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와서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소수의 건축가들이 가회동에서 자신의 주택이나 작업실 또는 서재를 꾸며 활용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 현상이다.14) 그러나 가회동의 한옥보전이 이런 식으로 해결되리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극히 소수의 한옥이 보존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한옥을 모두 개조하여 지역주민보고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가들의 가회동에서의 개별적 실천이 하나의 모범이 되어 비슷한 노력들이 계속 전파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례가 더 잘 전파될 수 있도록 공공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옥을 개 보수하여 사용할 의도가 있는 사람에게 저리융자와 세제상의 혜택을 주어 구입을 장려하고 이러한 변화가 시장에서 보다 잘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또 개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개조비를 지원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시나 공공재단에서는 마지막 수단으로 필요한 한옥을 매입하여 특정 용도로 활용하거나 이러한 용도로 들어올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분양 또는 임대하면 된다.15) 그리하여 규모가 큰집은 주거기능으로 유지되도록 하고 규모가 작은 것은 사무 및 상업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며, 가로변 한옥은 화랑, 전시장,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뒷골목 한옥은 작업실, 그리고 규모가 적당한 경우 주거나 숙박업소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하나의 문화마을로서 정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가회동을 현대적 생활이 가능한 생활과 문화가 살아있는 마을로 활용 보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며 행정이 나서서 간단히 할 수 있은 일이 아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주민 주체적으로 생활 문화가 살아나도록 해야한다. 기존의 코뮤니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새로운 코뮤니티가 유입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가회동에서 수용할 기능적 프로그램 또한 매우 중요하다.16) 우선 가회동에서의 급격한 변화는 경계되어야한다. 장기적이고 섬세한 계획을 세우고 군불을 때우듯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점진적 개선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행히 민간에서 소수나마 이러한 일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행정에서 이를 지원하고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가 너무 앞서 나가서는 안된다. 이렇게 되면 가회동은 결국 도심 민속촌이 되거나 보존 자체가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북촌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추구해온 파괴적 근대성에 관한 중요한 반성의 기회이자 의미 있는 선례가 될 수 있다.
가회동의 원형: 구축과 풍경
최소한의 변형을 수용하면서 가회동의 분위기를 유지한다고 할 때 그 보존되어야 할 가회동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가회동의 보존가치와도 관련되는 것이다. 가회동의 필지와 도시공간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차 문제는 공동주차장으로 해결할 수 있고 기타 설비는 지중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 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건축물을 개 보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능을 수용하도록 물리적으로 어디까지 개조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가회동 한옥의 물리적 구조물을 원형대로 보전하는 것에 중점을 둘 수도 있고, 좀더 융통성 있는 변형을 허용하는-풍경으로 표현되는-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중점을 둘 수도 있다. 가회동의 문화재적 가치를 중시할 경우 개 보수의 기준은 형태가 원 상태에 충실하도록 엄격해야 할 것이고 풍경을 중시할 경우에는 조금 완화된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즉 풍경을 보존할 것인가 구축의 형식을 보전할 것인가가 먼저 결정되어야한다.17)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회동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회동 한옥의 원형을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옥의 원형은 목조가구의 구축적 형태에 있다. 골조를 이루는 가구와 지붕, 그리고 가운데 마당을 갖는 배치는 한옥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므로 이것을 변형해서는 안된다. 배치와 가구에 비하여 벽체는 비교적 다양하고 변화가 많은 것이 한옥의 특성이다. 따라서 타일 벽돌 회벽 등의 기존재료 외에, 성능이 우수하고 주변과 조화될 수 있는 현대적 재료를 다양한 내 외벽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재료의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하고 그 안에서 융통성을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창의력이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한옥의 구축의 형식(Urform)을 가리거나 변형하는 것은 곤란하다. 예를 들면 콘크리트를 간막이 벽체로 쓰는 것은 가능할 수 있어도 콘크리트로 직설적인 구축적 또는 풍경적 형태를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몇 건축가들의 작업은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기존의 건축가에 의한 개 보수 작업 사례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한옥의 구축적 원형이 가리워 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가이드 라인 없는 개별건축가들의 과도한 창작욕은 전체적인 혼돈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촌에 있는 소형의 기존 주거를 개조하여 활용하려면 공동주차장의 확보, 냉난방과 같은 공동의 설비 인프라, 그리고 공공 시설물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한데 이러한 것은 개별적으로 투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전체지역에 관한 도시설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 북촌 전체를 다 같은 기준으로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을 구분하여 보존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북촌지역 한옥의 존재밀도와 분위기를 고려하여 지역을 몇 개로 차등 구분하고 각 지역에 관해서 점차적으로 완화된 가이드라인을 적용함으로써 북촌과 그 주변지역의 자연스러운 완충지역을 형성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18) 이 과정에서 물론 일부 주민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다. 주민의 반발은 적정한 보상과 설득, 법 제정을 통한 공권력의 행사로 무마할 수 있다. 또 개발이 허용되는 지역에서 개발의 결과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지역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북촌의 보존 문제에 전향적으로 접근하려는 이상 공공은 보다 치밀하고 신중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민간으로부터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면서, 적극적으로 주민을 설득시켜 나갈 수 있는 전문적 조정능력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