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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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종로구 와룡동 서울성벽을 따라 말바위 쉼터 방향으로 조금 걸으면 삼청공원 뒤 바위 정상에서 남쪽으로 북촌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 나온다. 바로 옆에 백악산과 멀리 오른편으로는 인왕산이, 왼쪽으로는 타락산이 자연녹지로 양 궁궐과 종묘 그리고 그 사이의 북촌을 감싸고 있다<U>2)</U>. 물론 한옥보다는 높이 솟은 권위적인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한눈에 전체를 볼 수 있다. 하산下山을 하여 삼청공원을 통해 삼청동으로 나와 감사원을 뒤로하고 베트남 대사관과 북한문제연구소 사이 골목길을 걷는다. 독일인 G씨가 나름대로 이해하고 수리한 한옥과 개방형 한옥인 하늘물빛 자연염색 공방 및 차도문화원을 지난다. 가회동 31번지 한옥밀집지역은 북촌한옥보존사업 초기부터 적극적인 골목 보호정책으로 밀집한옥의 경관과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30년 대 말 지어진 이준구 가옥(서울시 문화재자료 제2호)은 화강석 외벽과 프랑스풍의 뾰족 지붕으로 가회동 31-1번지라는 주소에 걸맞게 장소적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집을 기점으로 동북쪽 일대의 진품 한옥들은 일찍이 헐려 H그룹이 대규모 고급 저층주거로 개발, 외국기업 및 대사관 등이 임대하고 있고, 서남쪽 일대는 많은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31번지 일대의 도시형 한옥 군群이다. 이곳에는 살림집으로 사용되는 집도 많지만 자수공방·전통다도공방·화문석을 만드는 초고공방·전통바느질집인 우리빛깔공방 등 전통공방들도 산재하고 있다. 개인 소유의 집을 개방형한옥으로 등록하고 일정시간 열어놓음으로써 방문객들이 전통문화를 배우며 체험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지원하여 배려한 것이다. 중첩되는 한식기와지붕과 사이사이의 마당, 그리고 화방벽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31번지 일대를 한눈으로 조망한 후 동남쪽 골목길을 빠져나와 돈미약국 앞에서 가회로를 건너 가회동 11번지 일대로 가보자.
가회동 11번지 일대에는 프랑스인 T씨가 나름대로 이해하고 고친 한옥도 있지만 특히 서울시가 매입한 한옥을 보수공사 후 입주자 선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임대하고 있는 소규모 박물관이나 한옥 체험관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들 매듭박물관·부적박물관·자수박물관 및 북촌 한옥체험관·티 한옥체험관들은 방문객들이 내부를 직접 탐방할 수 있는 한옥 들이다. 북촌에 많은 조선말 또는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근대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계동 1번지의 중앙고등학교 건물들이다. 국가지정 기념물인 사적 제281호인 본관은 석조 2층 건물로 1934년 불탄 자리에 새로 설계해 1937년 9월 준공된 건물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건축가 박동진(1899~1982)이 설계했다는 점과 민간학교 건물로서의 의의가 크다. 1920년대 건축된 붉은 벽돌집 서관(사적 282호) 및 동관(사적 283호)은 나까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의 설계로 알려져 있다. 중앙중고등학교에서 바로 남쪽으로 계동 길을 따라 내려가거나, 동쪽 골목으로 창덕궁 담宮墻이 나오는 원서동 길을 거쳐 다시 북촌 길로 나가면 북촌문화센터까지 갈수가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경관은 북촌길 언덕에서 창덕궁을 보는 것이다. 궁장 너머로 새로이 복원된 규장각 권역 및 구선원전璿源殿 <U>3)</U> 서쪽에 있는 억석루憶昔樓 <U>4)</U>가 먼저 보이고, 그 뒤로 인정전仁政殿의 측면이 보인다. 계동 105번지 북촌문화센터는 조선말기 재무관을 지냈던 민형기의 집터이다. 민형기의 며느리인 계동마님 이규숙이 서울로 시집온 후 1921년 지은 집으로 1935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대궐목수에 의해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 따서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고 한옥의 배치 및 채와 담의 구성 원리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는 한옥매입사업의 첫 사업으로 이 집을 매입하여 수리를 하고 2002년 10월 29일 문화센터로 개관하였다. 문화센터에는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홍보하는 홍보전시관·한옥 수리관련 정보제공 및 상담을 하는 상담실·기타 주민 사랑방 등의 시설이 있다. 또한 서예·다도·한문·판소리 등의 전통문화강좌, 자연염색·오죽공예·매듭·조각보 등의 공예실기강좌 등이 마련되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북촌을 지킬 수 있을까? 서울성벽의 북쪽에서 율곡로에 이르기까지의 북촌은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맑은 물이 흐르던 삼청동 길은 자동차를 타고 밀고 들어오는 상업시설로 인해 주거 기능이 약해지고 있고 먹거리와 볼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연일 붐비고 있다. 경복궁 동쪽의 사간동 길은 현대문화예술의 기수로서 각종 전시장과 외국풍의 현대건축물로 즐비하다. 화동에서 안국동으로 내려오는 감고당 길은 전력설비의 지중화와 도로정비로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반기는 도로가 되었지만 도로취지에 맞지 않는 몰지각한 차량점거는 개선되어야할 사항이다. 그 외에도 삼청동의 복정길이나 안국동의 별궁길 및 기타 좁은 정겨운 골목길들과 그들의 경관보존은 이 지역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북촌은 골목길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의 규모도 달라지고 있다. 신축건물의 경우 주위와 동떨어진 이색적인 건물들을 짓고 싶어 하는 것이다. 특히 편리한 주거생활을 위해 천장을 높이고 규모를 키우는 등 아파트 평면에 목조기둥 박고 기와지붕을 올리면서 그것을 한옥이라고 이해할 때는 정말 안타깝다. 600년 넘은 숭례문이 불에 탔다고 온 국민이 애도하면서 오래된 마을의 한옥이 단체로 망가지는 데는 불감증이다. 주인이 키가 커서 집을 키우고자 하는 이에게 현대인의 체격도 커졌고 주변건물들이 높아졌으니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의 문루도 좀 높이지 그러냐고 묻고 싶다. 오래된 물길이나 골목길과 그에 면한 한옥에 마치 골동이나 고미술품처럼 역사성과 미학적 우수성에 지가地價 상승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지키려하고 개발을 자제하지 않을까? 1) 1864년(고종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47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한말의 비사(秘史)인 황현(黃炫)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이 당시 북촌에는 노론만이 거주하였고 소론과 남인 북인은 설령 고급관인일지라도 남촌에 섞여 살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老論)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少論)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매천야록(梅泉野錄)』권1 상) 2)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의 명칭 중 백악(白岳)ㆍ목멱(木覓)은 도교 용어이고 인왕(仁王)ㆍ타락은 불교 용어이다. 3) 창덕궁 안에 조선 역대 왕들의 어진(御眞)을 모신 전각이다. 위패를 모시고 신도를 섬기는 종묘제례와는 달리 궁궐 안의 선원전은 영정을 모셔 놓고 다과나 음식으로 차례를 드림으로써 인도로 선왕을 섬기던 곳이었다. 이렇듯 종묘는 궁궐밖에 있는데 반하여 선원전은 궁궐 안에 있는 사당이었다. 4) 지난날의 일을 되새긴다는 의미의 건물명 ▶글_ 조인숙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사진_ 장병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