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자료실
박영순
현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교수. 70년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 졸업,
73년 미국 웨인주립대학 대학원 졸업, 85년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이학박사.
미국 GM 디자인센터 산업디자이너, LG디자인 종합연구소 디자인 자문 역임.
『실내디자인 용어사전』, 『우리옛집이야기』, 『색채와 디자인』.
「조선조 가구에 나타난 의장요소의 분석」, 「한국 전통주택 실내공간의 색채구성」,
「한국 현대주택에 나타난 전통성 표현방법의 유형분류에 관한 연구」외 논저 다수.
어느 나라에서나 원시시대의 주거는 매우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기능으로 바람을 막고, 추위와 더위를 이길 수 있으며, 식생활을 위한 저장고와 화덕을 갖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고, 가치 기준이 생겨나면서 주거는 단순히 신체적 보호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과 만족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 발전된다. 각 지역의 자연적 여건과 사회 문화적 환경, 이념과 제도, 생활양식 등에 부합되도록 발전되면서 각 나라의 주거 형태는 각자의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인간의 신체가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이 되는 것과 같이 주택은 인간의 생활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또한 신체의 표현에 의해 정신 세계가 구현되듯이 주택의 형태는 한 사회 집단의 역사적 경험과 전통적 가치를 반영하는 생활문화의 총체적 산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주택을 대표하는 조선시대의 주택은 그 시대의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현대주택을 대표하는 아파트에는 이 시대의 생활문화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 그 동안 우리의 주생활 문화가 얼마나 엄청난 변혁을 이루어 왔나를 짐작케 한다.
전통주택과 현대 아파트를 비교해 보면 그 안에 같은 민족이 살고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구조와 형태나 재료가 상이하다. 최근에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현대 주택에 전통적 문양이나 요소들을 적용하려는 노력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현대적 아파트에 황토방을 깔거나 완자살 창문을 덧대거나 구름문양의 벽지를 부친다고 전통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택은 생활문화가 표출되는 대상일 뿐 문화의 주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택에 황토를 이겨 바른 선조들의 지혜와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본 심상을 이해하고, 완자살이나 구름문양이 지닌 의미와 그것을 통해 주택에 담고 싶어했던 상징의 근원을 현대적 의식으로 파악해 보는 것이 전통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전통주택이 형성된 배경과, 생활문화의 이념적 가치를 담고 있는 공간적 특성, 그리고 전통주택이 지닌 미적 요인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전통 주택의 형성 배경
1) 자연환경
자연적 배경은 우리의 옛집이 특정한 양식으로 형성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 요인이 되어 왔다.노년기의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의 지형적 특성은 우선 택지를 선정함에 있어 자연적 조건을 따라 뒤쪽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쪽엔 강을 끼도록 하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지형에 대한 관심은 풍수사상을 뿌리내리게 하였고 택지의 선택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지배한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풍수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생활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적도 있지만,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풍수의 기본개념은 자연의 질서체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현대적 기술사회에서 재인식되어야 할 많은 부분이 있음을 시사해준다.
또한 노년기의 구릉들이 이루는 산새의 완만한 곡선을 따라 주택이 지닌 지붕의 선은 인위적인 직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표현되었고 주택의 구조는 대지의 형태를 따라 단층의 안락한 수평적 구성을 보여준다. 주택의 규모나 배치에 있어서도 자연을 압도하기보다는 지형에 순응하고 경관에 조화되도록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멀리서 보이는 전통 마을의 형태는 처음부터 집들이 그 곳에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그 형태와 규모가 자연적 배경에 꼭 알맞게 어우러져 있다
(도판1).
한국의 전통주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 주택 내에 온돌구조와 마루구조가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사계절이 뚜렷하며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을 지닌 한국의 기후적 특성을 지혜롭게 반영한 결과이다. 구들을 덥혀서 실내를 따듯하게 하는 온돌은 좌식생활에서 추운 겨울을 나는데 유리한 난방방식이 되었고, 통풍을 위해 지면에서 바닥을 떠 있도록 설치한 마루구조는 앞뒤로 트여진 창호의 구성과 함께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하였다.
주택에 사용된 재료에 있어서도 초석과 기단, 담장에만 석재가 사용되었을 뿐, 주택의 주된 재료는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풍부한 소나무를 이용하였다. 따라서 목조가구식으로 이루어진 전통주택은 오랫동안 보존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견고한 석재나 벽돌 등을 사용하는 대신 기후에 따라 변화하는 목조주택을 고집해 온 것은 견고성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려는 선조들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전통주택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의 전통적 자연관은 자연을 도전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순응하고 배우며 인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 사회문화적 배경
한국의 전통문화에 중심적 이념이 되어 온 유교사상은 주택 내부에도 깊숙이 스며있음을 알 수 있다. 유교의 이념이 국가적 차원에서 숭상되고 국시의 기본이된 조선시대의 양반계층은 주택이가정생활 속에서 유교적 이념과 생활양식을 실천할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설계하였다. 즉, 유교의 삼강오륜 중 특히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와 같은 이념은 주택의 평면을 구성하는 기본개념이 되었다.
우선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가묘제(가정마다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공간을 두는 제도)는 주택 내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짓게 하였다.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드는 신성한 장소로서 외부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문에서가장 먼 곳이나 제일 높은 곳에 마련했으며, 사당을 별채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에는 제실을 두거나 대청에 신위를 모시는 벽감을 설치하여 사당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부부유별의 내외사상은 남녀간의 생활공간을 엄격히 구분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삼대 또는 사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에서 주택은 여성들이 사용하는 안채와, 남성들이 사용하는 사랑채로구분하여 별거하도록 구성되었다. 자녀가 태어나 유아기만 지나면 여아는 할머니나 어머니와 기거하고, 남아는 사랑채에서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도록 하였다. 부부가 합방을 하는 경우에도 이를 드러내 놓고 하기보다는 주택의 은밀한 구조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또한, 장유유서의 사상은 사랑채와 안채에 있어서 윗사람이 사용하는 방의 규모나 치장을 아랫사람이 사용하는 그것과 차등을 두게 하였다. 즉, 안채에서는 시어머니가 사용하는 안방의 규모가 며느리가 사용하는 건넌방 보다 커야 했고, 사랑채에 있어서도 가부장의 거처는 큰사랑, 장자는 작은사랑으로 구분하였다. 이로써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위계, 아버지와 아들간의 위계, 장자와 차남간의 위계 질서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유교적 생활문화는 오늘날의 사회질서와 비교해 볼 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믿음이었던 절제해야 될 일과 누려야 할 일, 드러내야 할 것과 가리워질 것에 대한 엄격한 구분과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려 했던 노력의 의미는 풍요와 무절제로 인해 더 많은 사회적 문제와 인성의 황폐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오늘날 되새겨 보아야 할 부분이 남아 있음을 일깨워 준다.
2. 전통 주택의 공간적 특성
1) 채나눔의 공간분화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은 솟을대문이 있는 행랑채로부터 시작된다. 솟을대문은 가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붕이 행랑채보다 높이 솟아오른 대문을 말한다. 행랑채는 여러 노비들이 기거하는 작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불을 때는 부엌이 곁달려 있다. 행랑마당에는 한 곁으로 곳간과 가마고와 마굿간을 두어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기 위한 전이공간의 구성을 보여준다(도판2).
솟을대문 안으로 행랑마당을 지나면 위엄있게 자리잡은 사랑채가 있다. 조선시대의 양반, 사대부의 일상생활 중 손님을 맞아드리는 접객은 매우 중요한 생활문화였으며, 이를 위한 접객의 장소였던 사랑채는 주인의 취향과 품격을 반영하는 핵심적 공간이었다. 따라서 사랑채의 기단은 사회적 계급에 따라 높아지는데 1m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품격을 나타내기 위해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사랑채는 사랑방, 대청과 누마루, 침방과 서고로 이루어진 남성의 공간으로서 문객을 맞이하고, 학문과 예술을 즐기는 장소였으며, 청렴한 선비정신에 따라 한지와 목재의 자연 소재로 간결하게 꾸며져 검소한 분위기를 나타내었다.
사랑채에서 사랑마당을 지나 중문을 통과하면 주인 마님이 거처하는 안채에 이르게 되는데 사랑채와의 시선 차단을 위해 설치된 나지막한 내외담을 돌아서 들게 되어 있다. 조선시대 양반집 여성들은 혼인 후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이 금지되었으므로 안채는 여성들에게 생활공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방과 건넌방, 안대청과 부엌으로 구성된 안채는 여성의 일상 생활공간일 뿐 아니라, 자녀의 혼인시에는 초례청(혼인 예식을 치루기 위한 기물을 차려놓은 장소)을 마련하고 신부를 맞아들이는 공간이고, 여성들의 출산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또한 임종을 맞이하는 공간으로서 인생의 시작과 끝맺음이 이루어지는 주택의 핵심적 공간이었다.
안채는 외부환경과 차단된 여성들에게 아기자기한 가구나 화려한 보료 방석 등심리적 위로가 될수 있는 장식적 의장이 많아 다채롭고 화사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취사와 난방을 겸했던 부엌은 안방과 건넌방 뒷 쪽에 각각 붙어 있는데 안방 쪽의 부엌이 주된 조리공간이고 건넌방 쪽의 것은보조적으로 사용되었다. 안채에 곁달린 부엌 외에도 반빗간이라 불리는 부엌채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었다.
사당채는 안채의 안대청 뒤쪽이나 사랑채의 뒤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보통 세 칸 정도의 규모로 별도의 마당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모습으로 되어 있다. 사당 안에는 단을 만들고 서쪽으로부터 고조, 증조, 조부모, 부모의 순으로 감을 설치하여 신위를 모신다.
이외에도 상류주택에는 별당이나 안사랑, 산정사랑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 별채를 지어 사용하였으며, 한 주택 내에 이루어진 이러한 여러 채의 공간분화는 전통주택의 특수성을 잘 나타내 준다(도판3). 이러한 주거공간의 구성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공간이나 작업동선의 비효율성 등이 문제점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신체적 편안함이 곧 마음의 풍요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채나눔에서오는 공간 경험의 다양성은 기능 위주의 현대 주택에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2) 개방과 폐쇄공간의 조화
한국 전통 주택은 외부에 대해서는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상징적 폐쇄성을 지닐 뿐 가변적이며 개방성을 지닌다. 즉, 외부로 면한 높은 솟을대문과 행랑채로 둘러싸인 전통주택은 밖에서 보면 감히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폐쇄적이다(도판4). 그러나 주택 내부에서 각 채들 사이에 있는 낮은 담장이나 장지문으로 구성된 실내의 창호는 각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개방성에서 오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는 헛기침이나 인기척을 내어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또한, 장지문으로 이루어진 창과 문도 서양의 주택처럼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창이면서 문도 되고 때로는 벽체가 되기도 한다. 즉, 서양의 벽체는 하나의 구조체로서 실내와 실외 또는 방과 방 사이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경계인데 비해 한국 전통 주택의 벽체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안방과 대청 사이, 대청과 안마당 사이에 들어열개문으로 구성된 벽체는 필요에 따라 문 바깥쪽으로 활짝 열어제쳐 놓거나, 또는 접어서 위로 들어 올려 들쇠에 매달게 되어 있어서 열어 놓으면 마치 벽체가 없어진 것 같은 개방감을 준다(도판4).
따라서 이러한 분합문을 들어올리고 여름에 대청에 앉아 앞마당을 내다보면 그 사이에 벽체나 창호가 없어 시선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향하게 되며 열린 공간이 된다. 이 열린 공간의 뒷벽체에도 문이 나 있어 이를 함께 열어 놓으면 맞바람이 불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음은 물론, 뒷마당이나 뒷담 혹은 뒷산까지 한눈에 들어와 쉽게 자연과 접할 수 있다. 이처럼 대청은 마당과 개방되어 주택 내부에서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었다. 또한 대청과 안방 그리고 건넌방 사이의 문을 모두 들쇠에 걸어 매달아 열어 놓으면 안방, 대청, 건넌방이 하나의 커다란 개방공간을 이루어 집안 대사를 치룰 때의 의례생활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개방성이 있는 창호는 필요에 따라 상당히 폐쇄성을 지니기도 한다. 겨울에는 들어열개의 분합문은 덧문이 되고 그 안쪽에 미세기가 설치되는데 명장(明障)지 홑겹만 달기도 하고, 사창(紗窓)을 덧달아 이중창이 되게도 하였으며, 앞뒤로 덧바른 맹장(盲障)지를 더 달아 삼중창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병풍이 둘러쳐짐으로써 겹겹이 차단되어 폐쇄와 개방의 유연성을 꾀하였다. 창에 바르는 재료도 서양은 투명한 유리와 시각적 차단을 위한 커튼이 발달한 반면, 한국은 빛을 중화시키는 종이를 창재로 사용하여 은은한 정서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여름에는 창을 열어 개방하고, 겨울에는 덧문을 달며, 경우에 따라서는 발을 드리워 공간의 개폐성을 조절하도록 구성된 한국 전통 주거 양식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하는 가변적 질서의 개념을 담고 있다.
3) 공간의 연속성
공간의 연속성은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의 변화와 연결을 느낄 수 있도록하는 특성이다. 한국 전통주택은 한꺼번에 전체적인 공간을 강열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창호로 이루어진 공간의 연결을 통해 서서히 그 내재된 연속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전통주택은 창과 문의 면적이 넓고 그 수가 많아 사람이 공간을 따라 움직이면서 느낄 수 있는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즉, 창호를 통해 시선의 방향이나 진행 방향을 바꿈에 따라 각 공간의 독립적인 성격은 줄어들고 공간과 공간의 연속성은 부각된다. 특히, 공간의 연속성은 외부에서 내부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나아갈 때,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 강하게 느낄 수 있으며, 진행 방향을 바꾸거나 단의 차이가 나는 곳을 오르내릴 때 공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전통주택의 진입과정을 보면,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판장문으로 구성된 대문을 통과하여 행랑채로 둘러싸인 약간 좁고 어두운 대문간을 지나면 밝고 넓은 행랑마당이 나오게 된다. 그 앞으로 다시 어두운 중문간을 통과하면 다시 한 번 밝고 넓은 사랑마당이 전개된다. 다음엔 낮은 담을 돌아 작은 문을 지나면 밝고 아담한 안마당이 펼쳐진다. 이처럼 문과 담은 다음 공간을 암시하면서 공간의 전개를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주택 내부에서도 공간의 연속성은 독특한 감각을 자아낸다. 내부로의 진입은 마당을 지나 기단을 오르면서 시작되므로 수직적인 움직임을 유도한다. 안채나 사랑채의 대청에 올라서면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로 배열된 방의 수평적 구성에 따라 공간의 진행이 바뀌게 된다. 대청에서 방으로의 진입과정에서도 공간의 연속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대청이 밝고 방은 어두우며, 방의 천장이 낮은데 비해 대청은 천장이 높아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연결되는 공간의 위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도판5).
한국 전통 주택에서는 이와 같이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그리고 진행 방향을 바꾸거나 단의 차이를 둠으로써 공간의 연속성을 다양하게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전통공간의 연속성은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압도되는 공간감이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느끼게되는 변화의 공간감이다.
3. 전통 주거의 미덕
전통주택이 지닌 공간적 특성에는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절제와 이러한 절제 의식을공식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담겨져 있다. 이러한 절제의 이념으로 구축된 주택의 형태에서 느껴지는 미감은 단순히 시각적인 미 이상의 것으로, 눈으로 파악되는 미라기보다는 마음으로 느껴지는 미덕이다. 한국 전통주택에 담겨진 이러한 미적 요인으로서의 미덕을 소박성, 포용성, 탈기교성, 관조성으로 요약해 본다.
1) 소박함의 미덕
어떠한 대상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이 없는데도 순수함 때문에 더 큰 감동이 느껴지는 특성을 소박함이라고 본다. 한국 전통 주거는 바로 이러한 특성을 지녔다. 화려하게 치장된 주택을 지어 자연을 배경이 되도록 하기보다는 주택을 자연과 하나로 동화시켰으며, 규모를 웅장하게 지어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작고 안정된 규모의 주택을 지었다. 이는 사상적으로 조선시대의 유교적 금욕주의나 중용사상 에 근간을 둔 것으로, 지나치게 크거나 요란한 것은 물론이고,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거나 눈에 띄게 세련된 표현도 억제하였다.
특히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명산에는 산신이 산다고 믿었으므로 산을 허물거나 훼손하는 일은극히 드물었다. 오늘날과 같이 필요에 따라 산을 없애버리는 일은 물론, 경관조차도 변화시키지 않았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와 함께 더불어 살아 가야할 대상으로 믿었기 때문에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극히 절제하였다. 따라서 초가집은 둥근 지붕 선이 산형을 그대로 닮았으며,상류주택이나 궁궐까지도 그 지붕 선을 산자락의 선과 어우러지게 하였다. 여러 채로 분화되어 있는 주택의 외관은 매우 간결하고 아담하여 자연에 묻혀 있는 듯 보이게 하였다.
한국 전통주택의 실내공간 역시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거나 과장되는 일이 없었다. 이는 실내의 모든 치수를 설정할 때의 기준이 항상 인간의 신체와 생활양식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적 관점으로 볼 때는 다소 규모가 작은 방이 계획되었지만, 당시의 평균 신체치수나 좌식 생활양식에서는 오히려 아늑하고 안정감을 주었다. 일반적인 방의 크기는 사방 15척으로 소규모였다. 사방이 15척인 방의 중앙에 사람이 앉는다면 7.5척의 간격이 좌우와 전후에 남게된다. 이때의 7.5척은 당시의 평균 신장 5척과 앉은키의 눈 높이 치수인 2.5척이 합쳐진 수치이다. 방의 높이 역시 인간 신체에 근거하여 그 치수가 결정되었다. 방의 천장 높이는 보통 7.5척으로 잡았는데, 이는 앉은 키 위에 서 있는 사람 키의 수치를 합한 값이다. 이처럼 한국 전통 주거의 실내공간은 비록 소규모이기는 하나 인간척도를 근거로 한 치수여서 당시의 생활에 편안함을 주었으며 필요 이상의 과장됨이 없어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전통주택은 자연의 흐름에 동화된 겸허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무리 큰 건물이라 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규모를 지녔다. 특히, 민가 중 초가집은 규모뿐 아니라 재료의 사용이나 구조에서도 크게 공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어냄으로써 소박함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다.
2) 포용성의 미덕
어떠한 대상의 훌륭한 것뿐만 아니라 부족한 것 어긋나는 것까지도 모두 수용하고 어우르는 특성을 포용성으로 본다. 한국 전통주택은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를 인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용하거나 조형물의 형성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변형까지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연, 인간, 주택을 통합적으로 포용하는 미덕을 보여 준다. 자연이 지니고 있는 불규칙성이나 변화로운 형태로 인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이 전통주택은 얼핏보면 마무리가 덜된 듯한 불완전성을 지님으로서 넉넉한 느낌을 자아낸다.
천장의 서까래는 반듯하게 다듬지 않고 나무의 구불구불한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장지문의 창호지는 가장자리를 반듯하게 자르지 않고 종이가 만들어진 그대로 사용하였다. 또한 기둥이나 대들보에 사용한 소나무도 웬만큼 다듬은 채로 미완성의 미를 그대로 포용하였다. 그것은 자연의 변화와 변칙의 섭리를 터득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완벽한 완성미에서는 볼 수 없는 심리적 풍요함과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한국의 소나무는 곧게 뻗지 못하고 구불구불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굽어진 것은 굽어진대로, 옹이가 있는 부분은 옹이가 있는 대로 이를 적절하게 수용하여 사용하였다. 나무를 다듬을때도 정교하게 마무리하기보다는 가지만 잘라내는 정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였으며, 주춧돌과 밀착되는 면도 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연결시켰다. 이는 목재를 대패로 정확하게 다듬어 사용할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연의 다양함을 존중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포용의 의식이 표현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마루에 깔린 널판이나 판장문에서 보여지는 연결선들도 정확한 기하학적 직선이 아니라매우 자연스러운 선들의 모임으로 구성되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세워지는 기둥의 경우에도 굵기나 휘어짐 정도는 각각의 나무에 따라 다르며, 서까래에 사용할 목재가 너무 구부러져 있더라도 서까래로 사용하기에 구조적인 이상만 없다면 그대로 살려 사용하였다.한국 전통 주택의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대들보를 올릴 때에도 나무가 휘어져 있으면 휘어진 그 상태를 오히려 구조적 보강이 되도록 사용하였다. 위로 휘어져 있는 대들보는 지붕의 하중을 기둥으로 보내는데 유리하게 했으며 심리적으로도 공간적 여유를 느끼게 하였다.
한국 전통 주거공간이 자연과 같은 넉넉함을 지니고 자연의 일부분처럼 포용성 있게 느껴지는 것은 사상적으로 유교, 불교, 도교의 기본정신인 너그러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용성은 시각적으로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심리적으로는 완결 이상의 풍부함을 느끼게 한다.
3) 탈기교성의 미덕
한국 전통주택에는 어느 곳을 보아도 감탄을 자아낼 만한 장식적 기교가 없다. 인위적인 기교는물론 인공의 가미조차 최소한으로 절제한 본래의 미를 중시하였다. 기교로 장식을 첨가하기보다는 원재료의 특성 그대로를 살려서 자연과 대립되지 않는 부드러운 조화를 만들어냈다. 전통 주거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인은 이러한 탈기교성을 보이며, 세부장식에 치중하기보다는 작품의 전체적 조화를 중시하여 어수룩해 보이지만 원만하며 깊은 멋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기교를 가치 있게 보지 않는 탈기교성도 자연주의 사상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하였던 소박성이나 포용성과 더불어 한국 전통 주거에 격조와 단아함을 부여하고 있다.
실내의 구성요소인 벽, 바닥, 천장은 자연에서 추출해낸 재료를 있는 그대로 사용했을 뿐, 이를 도색 하거나 특별한 표면처리를 하는 일도 없었으며 재료가 갖고 있는 특성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주택을 지은 것이다. 따라서 전통 실내에는 재료자체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이 있을 뿐 기교가 넘치는 장식적 세부는 없었다. 실내의 천장과 벽에는 문양 없는 흰색의 한지가 발라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바닥도 문양 없는 장판지로 마감되었다. 이로써 방 전체의 조화는 매우 자연스럽고 중성적이며 색채 또한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단아하였다.
마루에 사용된 목재와 회벽으로 마감된 벽체의 경우에도 나무의 어두운 색과 투박한 질감과, 흰색의 회벽이 지닌 매끈한 질감은 강한 대비를 이루어 정갈한 느낌을 주지만 목재 자체에서 나오는 나뭇결이 있을 뿐 장식적 문양이 크게 두드러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한국 전통 주거는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으며 언제 보아도 정답고 편안한 공간이 된다.
한국의 자연경관은 편안하고 아늑하다. 자연이 과다한 기교를 부린 적이 없듯이 한국 전통주택 역시 이러한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탈기교성의 고고함을 지녔다.
4) 관조성의 미덕
관조는 사물의 표면적 특성이나 형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내재하는 정신적 의미 또는 가치를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물이 관조적 특성을 지닌다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보여진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내면적인 미덕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는 색채나 형태 등에 있어서 현란하게 눈에 띄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고요한 마음으로 관찰하거나 음미해야만 인식될 수 있고, 일단 인식되면 그 깊은 멋과은근함에 끌리게 된다.
한국 전통 주거에는 채워진 공간보다 비워진 공간이 많아 여백의 미가 강조됨으로써 조용하고 여유 있는 공간을 이룬다. 꼭 필요한 가구나 그림만을 걸고 나머지 공간은 그대로 비워 둠으로써한가로움과 고요함이 창조되도록 한다. 비워있는 곳을 채워주는 것은 자연이며 그것을 느끼는 마음이다. 방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마당을 지나 자연환경까지 연결되며, 비워진 공간을 자연으로 채움으로서 자연의 질서를 주거 내부 공간에까지 반영한다. 마루의 텅 빈 공간은 앞뒤로 트여진 자연을 불러들여 인간과 자연과 공간이 하나됨을 느끼게 하는 관조의 심상으로 이끌어 준다. 전통 실내에 비워진 공간이 많은 것은 우리의 생활이 좌식이므로 서양에 비해 가구의 크기가 작고 낮아서 남는 공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빈 공간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상태란 높은 이상과 겸허한 인격이 형성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렴한 선비나 정숙한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전통주택의 단아한 모습에서 당시에 가치있다고 믿었던 절제의 높은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빈 것처럼 보이는 여백은 겸허한 가운데 품격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분에 넘치지 않음으로써 그 자체의 격조를 지키고 있다. 이는 도를 지나치면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이 온다는 것을 터득한 선조들의 금욕적 생활태도와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관조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전통 주거는 자연의 경지를 최상으로 여기는 자연주의에 기본개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자연의 섭리와 질서체계를 존중하는 자세로서 이를 탐구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한 주택의 형태를 고안하였으므로 자연과 인간과 주택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또한 이러한 기본개념으로 구체화된 주택의 공간적 특성에서 느껴지는 이름다움은 중용과 절제에서 비롯된 소박함, 통합적 사고에서 비롯된 포용성, 형식보다는 본질의 추구에서 비롯된 탈기교성, 그리고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관조의 미덕을 담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더할수록 정신적 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생활 속에서 전통주거가 지녔던 빈 공간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돌이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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