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인 호(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2001. June, 30  -- 세미나 발표 @충남 도고


1. 역사도시 서울의 북촌(北村)

수선전도(首善全圖,1840년경)나 한양도성도(漢陽都城圖,19세기초)와 같은 서울의 옛 지도를 보면서 서울이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한다.
산수화 같기도 하고 개념도 같기도 한 그 옛 지도들은 서울의 구성과 아름다움을 잘 담고 있다.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백악(白岳), 인왕(仁王), 목멱(木覓,남산), 낙타(駱駝,낙산), 네 개의 산과 그 능선을 잇는 성곽이 돔봉?경계이다. 그리고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길이 개천(淸溪川)으로 모여 동쪽으로 흘러 나가고있다. 도성 안쪽에 경복궁과 창덕궁을 중심으로 사직과 종묘, 크고 작은 궁(宮)들이 보이고, 그 주요시설들을 길이 잇고있다. 남대문에서 휘어져서 올라온 길과 동대문으로 나가는 종로가 정(丁)자를 이루고, 다시 종로에서 북쪽방향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르는 길이 도시가로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 길들은 반듯하게 세 줄로 표현되어있다. 그 길을 중심으로 물길과 나란히 또는 교차하면서 불규칙해 보이는 길들이 보인다.옛 서울의 구조는 자연지형과 함께 읽혀진다. 자연의 질서와 모양을 존중하면서 그 위에 궁과 길을 얹어 완성한 도시이다.

그런데 1960년대 말 이른바 강북근대화사업의 일환으로 청계천이 복개되고 세운상가가 건설되면서, 서울에 투영되어있던 자연은 빠른 속도로 지워지기 시작한다. 1980년대의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도심의 작은 필지와 길들은 지워지고, 거대한 고층건물 블록으로 바뀌게된다. 스카이라인이 바뀌고, 산이 가려졌다. 거의 지워지고 망가진 듯한 서울, 이제 몇몇 궁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흔적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북촌의 한옥주거지이다. 1991년 5월1일 한옥보존지구가 해제되면서 한옥이 크게 줄었다고는 하나, 북촌에는 아직 800여동 한옥이 남아있다. 이 한옥들은 역사도시 서울의 일상적인 옛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도시문화유산이다.

2. 한옥의 구성과 아름다움

우리나라 한옥의 구성과 아름다움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목가구조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다. 한옥은 나무를 다듬어서 기둥을 세우고 보를 걸고, 그 위에 소로와 첨차, 도리와 서까래를 짜 맞추어 세운 집이다. 각 나무부재들은 건축물을 지지하는 구조체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한정하는 요소이다.
유럽의 옛 건축문화가 조적구조에 바탕을 두고있다면, 동아시아의 옛 건축문화는 목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조적조의 건축은 벽으로 에워싸인 공간을 기본으로 하고있고, 목가구조의 건축은 기둥과 보로 한정된 공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조적조의 건축이 벽을 어떻게 열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공간의 성격을 결정해왔던 것에 반하여, 목가구조의 건축은 벽을 어떻게 닫을 것인가를 궁리하면서 공간을 한정해왔다. 목가구조의 골격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의 창호로 공간을 열고 닫음으로써, 변화에 대응하는 한옥 공간을 연출하고있다.

둘째는 온돌과 마루에 의한 공간구성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다. 신을 벗고 올라가서 바닥에서 좌식생활을 하고있다는 점에서, 한옥은 중국의 목조건축과 구별된다. 한편 마루와 온돌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목조건축과도 구별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옥은 순수한 목조건축은 아니다. 흙은 지붕과 벽체, 그리고 바닥에 매우 큰 비중으로 사용되고 있다. 활달하지만 무겁고 두터운 느낌의 목조건축, 나무와 흙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얻어진 한옥의 조형이다.

세째는 집의 중심에 있는 마당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다. 마당을 에워싸면서 채들이 배치되는데, 지역에 따라 닫힌 ㅁ자형 한옥, 튼ㅁ자형 한옥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그 구성의 요점은 집의 중심에 남겨진 마당이다.
그 안마당은 일견 닫혀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ㅁ자형 한옥 너머의 외부공간과 소통하고 있다. 그 마당으로 인하여 내부공간은 외부공간(안마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구성된다. 내부와 외부공간의 역동적이고 풍부한 관계, 한옥 공간구성의 중요한 특성이다.

3. 근대 도시주택유형으로서의 북촌 도시한옥

북촌에 있는 한옥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형은 1900년대 전후에 부정형한 필지에 지어진,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들이다.
계동105번지의 한옥은 필지경계선을 따라 바깥채와 안행랑채, 뒷행랑채가 배치되어있다. 이렇게 도시에 대하여 폐쇄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한정하고, 그 안에 마당과 짝을 이루며 ㄱ자형 안채와 ㄱ자형 사랑채가 연결되어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현재 몇 채 남아있지 않지만, 근대화이전에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던 도심 가까운 쪽 필지에 남아있는 한옥이다.

둘째 유형은 북촌에 현재 많이 남아있는 중소규모의 도시한옥이다.
가회동 안쪽의 11번지와 31,33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한옥주거지를 이루고있다.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주택경영회사들에 의하여 대규모로 공급된 이른바 집장사집이다. 그들은 1930년대 전후로 한 시기에 대형 필지나 주거지 안쪽에 남겨져 있던 구릉지를 매입하여, 그 자리에 고밀도로 중소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여 공급했다.
유리와 함석 등 새로운 재료가 사용되고, 평면이 단순화되고 표준화된 소위 개량한옥이다. 그러나 이 한옥들이 갖고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도시와 건축이 동시에 건설되었다는 점에 있다. 도시한옥은 전통적인 한옥이 근대적인 도시조직과 만나면서 둘 사이의 관계를 조율해 가면서 진화된 새로운 도시주택유형이다.

가회동 31,33번지의 도시한옥주거지는 남사면에 형성된 주거지인데, 남북방향의 경사진 골목길을 중심으로 한옥들이 군집하고있다. 가회동 11번지는 서사면 주거지로, 경사와 나란히 난 남북방향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한옥들이 군집하고 있다. 이 주거지들이 주거지구조는 남북방향의 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옛 주거지조직의 연장선상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 위에 놓인 도시한옥의 평면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경기지역의 민가평면유형에 바탕을 둔,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보고있는 튼ㅁ자형 평면이다. 다른 하나는 ㄱ자형 안채와 일자형 문간채가 일체화된 ㄷ자형 평면이다. 그중 남쪽 또는 동쪽으로 열린 ㄷ자형 평면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남북방향의 골목길과 남쪽으로 열린 ㄷ자형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ㄷ자형 평면은 도시 속에서 한옥이 향(向)에 대해 열려있으면서 길에 대해 닫혀있는 마당을 가질 수 있는 구성방식이다.

ㄷ자형 평면이 갖는 도시주택유형으로서의 의미는 봉익동12번지의 연립도시한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도시한옥주거지 역시 1929년경에 당시 큰 필지였던 땅이 주택개발업자에 의하여 필지가 분할되어 개발된 주거지이다. 그 중에 ㄷ자형 평면이 세 채 연립된 연립 ㄷ자형 도시한옥이 있다. ㄷ자형 평면이 좁은 대지에서도 중심에 마당을 가질 수 있는 평면유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 북촌 한옥마을의 보전과 재생

북촌의 한옥마을은 현대 서울이 급격하게 변해 가는 와중에도 그나마 옛 서울의 역사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게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 휘문고등학교, 창덕여자고등학교 등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자리에 현대건설사옥과 헌법재판소와 같은 거대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한옥기와지붕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모여 이룬 도시경관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재벌과 정부, 자기들은 이처럼 폭력적으로 역사도시를 파괴하면서, 한편으로는 가회동 삼청동 안국동 원서동 소격동 사간동 송현동 재동 화동의 북촌 지역을 1983년 7월 '집단미관지구'로 지정하고 다시 1984년 4월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하게된다. 공공투자나 별다른 혜택도 없이 이 지역 한옥들의 증개축은 엄격히 통제되었고, 신축 건물 역시 건축심위위원회의의 심의를 거쳐 전통한옥양식을 모사하도록 규제되었다.

그리고 서울시는 북촌 지역에 대하여 1985년 「한옥지구 도시설계」, 1991년 "전통문화지대 복원·정비실시계획안」, 등의 연구를 통하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나 그 때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북촌의 한옥들은 점점 노후화 되었고, 엉뚱한 콘크리트 한옥들이 건설되면서 도시경관은 점점 천박하게 바뀌어갔다. 급기야 홍수로 불량한옥이 무너져 내리면서 사상자가 발생하게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주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여 서울시는 한옥보존지구를 전면해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은 급속한 속도로 무너졌고, 그 자리는 조악한 다세대주택으로 채워져 갔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잇는 넓은 길이 북촌의 허리를 끊고, 가회로도 4차선으로 넓혀지고, 북촌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져갔다.

현재 시정개발연구원에서 연구진행중인 '북촌한옥마을 만들기' 과제는 막다른 골목과도 같은 상황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과제의 초점은, '한옥등록제'와 '보전재생을 위한 개보수공사비 지원 및 한옥매입과 활용'이다.

첫째 북촌의 한옥은 역사적인 공공재산이기에 앞서 개인의 사적재산임을 간과하고서는 북촌 한옥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한옥등록제'는 "한옥에서 살고싶다"라는 주민의 자유의사에 따라 한옥으로 등록하게 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등록한 한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을 주고,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북촌한옥마을'의 성패를 주민의 결정에 맡기고, 서울시는 이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을 하면 된다. '한옥등록제'는 큰 전환이다. 한옥에 사는 북촌주민의 마음을 움직여서, 한옥을 보존하고 재생해 가는 정책이다.

둘째는 북촌의 한옥은 사람들이 '사는 집'이고, 북촌 마을은 그 장소에서 지형과 더불어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북촌 한옥에 대한 정책과 연구의 목적은 '한옥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한옥은 잘 쓰여질 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한옥을 부수고 양옥 짓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비로소 역사도시경관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옥개보수공사비 지원'은 한옥의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 공공자금을 개인에게 지원하는 정책이다. 한옥을 개보수하는 비용을 지원하여 '한옥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현대적인 삶과 여유를 생산할 수 있는 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다.
한옥지붕과 안마당, 길에 면한 한옥의 외관을 개보수하는 비용은 서울시에서 일정 부분 보조한다. 시민들은 도시의 역사적 경관을 향유하는 일정한 대가를 세금으로 치는 셈이다. 한옥 내부를 개보수하는 공사비용은 무이자로 융자해준다. 한옥 내부가 편리하고 지혜롭게 이용될 때, 한옥의 외관도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북촌의 역사적인 도시경관'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한옥 또는 대지를 구입한다.
그 한옥들은 주민들이 공유하는 시설, 한옥의 안마당과 내부를 개방하여 시민들이 온전하게 이 지역을 체험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시설, 북촌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시설로 사용하도록 한다.

5. 한옥의 보전 재생기법으로서 목조건축의 가능성

목가구조로 건축된 '옛 한옥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면서, 현대적이며 기능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려할때, 현대 목조건축은 다른 어느 재료나 구법보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한옥을 부분적으로 개조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덧 붙이려할 때, 현대 목조건축구법은 전통적인 목가구조구법의 연장선상에서 동질적인 구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공방식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점에서 다른 구조방식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둘째 구조재 및 마감재로서 목재는 한옥의 전통적인 목구조 공간에서 친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장생산된 목재를 보다 합리적이며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경제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목조건축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옥을 재생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혜로운 대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 I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