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호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조경학부

1930년대의 변화/ 우리가 기억하는 서울의 옛 모습

근대도시 서울의 모습은 1926년 조선총독부청사 신축과 1936년 경성부 시가지경계확장을 계기로 급속하게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는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전시체제로 전환되기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동안 주택수요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기존 도시주거지가 다시 개발되었다. 삼청동35번지 가회동 1번지 원서동 4번지 일대의 구릉지, 그리고 세력가의 저택이 있던 가회동 31번지 등, 기존 주거지 주변에 대형 필지로 남겨져 있던 필지들이 주택개발업자들에 의하여 택지로 조성되고, 그 위에 중소규모의 한옥들이 집단적으로 건설되었다. 한편 도성외곽지역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새로운 주거지가 조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도성 동쪽의 안암지구 용두지구 등에는 한옥들이 조선인을 위한 도시한옥주거지가 건설되었다. 구릉지와 논밭이 주거지로 바뀌는, 상전벽해와도 같은 큰 변화가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이 도시한옥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채, 옛 한옥이 새로운 도시와 근대의 요구에 적응하면서 완성된, 근대도시 서울의 새로운 도시주택유형으로 평가할 만하다. 1929년 10월 27일 조선일보에 한옥매매광고에서 보듯, 이러한 중소규모 도시한옥들은 꽤 활발하게 거래되었었다. 우리가 ‘그때 그 사진’에서 기억하는, 한옥지붕으로 가득한 도성 안 북촌이나 도성 밖 보문동 용두동의 옛 한옥주거지의 경관은, 1930년대로부터 1960년대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1990년대 북촌 원서동의 변화/ 무너지는 역사도시경관
북촌은 1984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 이후 한옥 보존을 명분으로 개발이 엄격하게 제한되었었다. 그런데 강남이 아파트단지로 개발될 때나, 다른 기성시가지들이 다세대주택으로 바뀌어갈 때, 그 개발이익으로부터 소외되어있었던 북촌주민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옥보존지구의 해제를 강력하게 주장하게 된다. 결국 1991년 한옥보존지구가 전면 해제되고, 그로부터 한옥이 하나 둘씩 철거되고 그 자리에 4층 높이의 다세대주택이 건설된다. 기성단독주택지도 그렇지만, 한옥주거지는 옆집에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는 순간 숨이 탁 막히게 된다. 옆집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안마당은 더 이상 집의 중심으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그 순간 도시한옥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결국 보존지구 해제 직전 1500채였던 한옥은 2001년 약 900채가 남아있을 뿐이다. 10년 사이에 600채의 다세대주택이 건설된 셈이다.
특히 원서동 77번지 일대의 능선 위에는 노후화된 한옥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서울시는 이 지역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하고 다세대주택 건설을 유도하였다. 대부분 한옥이었던 347동을 철거하고, 필지경계선을 합필 조정되고, 길을 새로 계획되었다. 그 위에 4층 높이의 다세대주택 81동이 건설되었다. 용적이 4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고, 가구 수도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내부평면은 현대식으로 편리하게 바뀌었지만, 외부공간은 인색하게 위축되었고, 도시경관은 천박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약간의 새로운 이득을 얻은 대신, 아름다운 역사경관과 오래된 도시조직을 잃은 셈이다.


1990년대 보문동의 다세대주택 건설/ 고립된 도시한옥 조각
보문동은 안암동, 삼선동 등과 함께 1937년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일환으로 돈암 지구로 지정되었던 지역이다. 당시 경성부 경계 확장에 따라 새롭게 편입된 지역이다. 보문동 일대는 전형적인 격자형 패턴의 주거지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서방향으로 약100미터, 남북방향으로 약40미터 규모의 블록을 기본 단위로 주거지가 조성되었는데, 1940년경 각각 약40개의 필지로 분할되면서 도시한옥이 건설되었다. 보문동 60번지가 있는 도시조각은 남북방향의 뚫린 골목으로 분할된 후, ㄷ자형 도시한옥들이 남향으로 앉혀졌다. 보문동 173번지가 있는 도시조각은 4열로 필지를 분할된 후, 안쪽 필지들은 짧은 막힌 골목으로 연결되었다. 안쪽 필지에 놓인 도시한옥들은 진입조건과 향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독특한 도시조직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보문동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다세대주택 개발 몸살을 앓았다. 동네 전체가 공사장을 방불케 했다. 아직 까지도 여러 채가 공사 중이다. 10여년 사이에 보문60 도시조각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연쇄적으로 다세대주택으로 바뀌었고, 보문173도시조각은 블록의 바깥쪽 필지는 다세대로 개발되고, 안쪽에 있던 도시한옥들은 고립된 채 포위되어 있다. 이렇게 집과 집 사이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불신 상태로 깨져 버렸다.


도시한옥의 안마당과 다세대주택의 공용계단
도시한옥의 가장 중요한 유형적 특성은 집의 중심에 마당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지가 사오십 평정도의 작은 필지이지만, 예외 없이 집의 중심에 안마당을 가지고 있다. 대지의 규모에 따라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 보면서 큰 ㅁ자형을 이루거나, ㄱ자형 안채와 일자형 문간채가 조합되어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도시한옥은 건설당시부터 셋집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것이다. 일자형 문간채는 ㄱ자형 안채의 간섭 없이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세를 놓기에 적절하다. 대지가 작아도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덜 불편하다.
여러 가구가 동거한다는 점에서, 다세대주택은 도시한옥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셈이다. 4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구조로 바뀌고, 층별로 구성된 여러 가구들이 공용계단으로 연결된다. 대지 규모가 작으면 한 층에 한 가구만 구성되고 길쪽으로 외부계단으로 연결된다. 대지규모가 적정 규모가 되면 한 층에 계단실을 중심으로 두 가구씩 구성된다. 다세대주택의 공용계단은 도시한옥의 마당과 견줄 수 있다. 이 두 단위공간은 가구들을 연결해주는 공유영역이다. 다세대주택에서 단위평면이 집약되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그 대신 그 사이의 공유영역이 축소되고, 가구들 사이의 간격도 서로 불편할 정도로 빈약해졌다. 이 공유영역을 이용하는 방식과 이웃들의 관계도 결국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세대주택은 개인영역과 개인영역사이의 간격이 지나치게 좁다. 단지 물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둘 사이는 적절한 간격과 여유가 필요하다. 보문동의 계단실형보다는 외부계단형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가구와 가구 사이에 외부공간이 있기 때문에, 이 공유영역은 한결 여유롭고, 길과의 관계도 풍부하다.


도시한옥의 문간과 다세대주택의 주차장
도시한옥주거지의 도시조직은 얼핏 불규칙해 보이지만, 길과 주거유형 사이에 기본원리가 있다. 그것은 남북방향의 골목길과 남쪽으로 열린 ㄷ자형 한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남북방향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조직될 때, 골목길 좌우 필지에 놓이는 한옥은 길에 대하여 닫혀있고 남쪽을 향해서 열려있는 마당을 가질 수 있다. 문간채는 길과 필지가 만나는 경계에 놓이면서, 길과 마당이 만나는 방식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도시한옥에서 문간은 매우 독특한 단위공간이다. 도시한옥의 평면구성은 문간과 안마당을 중심으로 그 구성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데, 문간은 골목길과 안마당을 연결해주는 결절점이다. 그것은 단지 기능적인 출입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문간을 열어 놓으면 안마당은 골목길과 연결된 중간영역이 되지만, 일단 닫아 버리면 안마당은 길로부터 완전하게 차단된 사유영역으로 전환된다. 문간을 열고 닫음으로써 안마당의 성격이 전환되는 것이다.
밀도가 높아진 것뿐 아니라, 다세대주택으로의 개발은 길과 집의 관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자동차이다. 도시주택에서 평면구성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차장이다. 가구당 0.7대 또는 복렬주차방식의 허용 등 주차장법 시행령의 개정은 그때마다 다세대주택의 평면과 단면을 바꾸어왔다. 도시한옥에서 골목길과 문간과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영역의 흐름은, 이제 다세대주택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들어가면서 골목길의 단면이 크게 달라졌고, 길과 집이 만나는 접점에는 주차장이 구성되게 되었다. 도시주거지조직이 사람 중심에서 자동차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영역들 사이의 관계는 아직 적절한 흐름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도시한옥에서 문간이 해왔던 역할을, 이제 주차장이 적절한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주차장에 대한 인식 전환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계단실과 함께 길과 집이 만나는 방식을 조율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한다.


다세대주택을 새로운 도시건축유형으로 평가할 만한가?
다세대주택은 주택건설시장에서 여전히 양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주택공급율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다세대주택은 도시한옥주거지의 역사경관을 훼손하고, 주민들의 삶의 방식도 바꾸어 버렸다. 그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나는 아직 다세대주택을 완성된 도시주택유형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도시한옥의 마당이나 문간에 함축된, 도시주택유형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세대주택이 이 시대의 도시주택유형으로서 평가받기 위해서는, 개발방식을 필지단위에서 골목단위로 전환해야한다. 단독주택 설계가 아니라, 주거지 설계를 유도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고, 주민들의 인식도 바꾸어져야한다. 여러 도시건축가들의 작업을 통하여 다세대주택이 2000년 우리나라의 새로운 도시주택유형으로 진화되고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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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회동 1번지 옛 전경사진/2000년: 1935년에 건남사에 의해 건설된 전형적인 도시한옥주거지, 2000년 봄에 고급빌라를 짓기 위해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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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옥매매광고(조선일보1929년10월27일자): 봉익동 11,12번지의 한옥에 대한 광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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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봉익동 11,12번지 일대 도시한옥주거지 전경/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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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원서동 77번지 주거환경사업개선지구의 변화: 1962년 항공사진, 1967년 지적도와 도시한옥주거지, 2000년 다세대주택 주거지로 바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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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동에서 바라 본 원서동 다세대주택 군/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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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보문동 173번지 일대의 사진/199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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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문동 60번지 일대의 전경사진: 다세대주택의 외부계단/199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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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원서동 다세대주택의 일층 주차장 사진/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