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의도한 본 기획은 다세대, 다가구주택(이하 다세대주택)을 다루고 있지만, 난립하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의 모색을 목표로 마련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다세대 주택이 난립하는 가운데 보석같이 아름다운 다세대주택을 디자인하는 건축가의 작업을 찾아내어 다세대주택 건축의 모범으로 삼고자 마련한 특집은 더군다나 아니었다.
이미 다세대주택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도시인의 드림 하우스(dream house)로 정착한 아파트와 함께 도시주택의 전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2002년 6월말 현재 서울시 내 다세대주택은 82만6천 가구로 1백2만1천 가구인 아파트 다음의 주거유형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최근 2년 사이에 급격히 심화되었다. 지난 1분기 사업계획 승인 기준 주택건설실적에 따르면 다세대주택은 46%인 6만 4천9백93 가구로 43.8%로 6만1천8백49 가구였던 아파트를 추월하였다고 한다. 다세대주택이 전체 건설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6.6%, 99년 4.4%에 그쳤으나, 2000년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그 비율이 38.6%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는 46%로 아파트를 추월한 것이다.


지난 8월 21일 서울시가 발표한 ‘2002 주택현황’에 따르면, 다세대주택의 증가와 단독주택의 감소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2002년 6월 말 현재 시내 총 주택 수는 2백16만8천9백12 호로 지난해 말 2백14만6백75 호에 비해 1.3%인 2만8천2백37호가 증가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단독주택은 지난해 말 59만9천4백83호로 3백호가 새로 지어진 데 반해 9천1백3호가 헐리면서 전체적으로는 8천8백3가구나 줄었다. 단독주택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특히 강남구의 경우 올 상반기 단독주택은 4백37호가 헐리고 신축된 것은 4호에 불과한데 비해 다세대주택은 1백64호(2천97가구)가 신축되는 등 소멸되는 단독주택의 상당수가 다세대주택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다세대의 난립이 가져올 상황을 일상의 삶 속에서 우려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급속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난립하는 다세대주택을 보면서 북촌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1970년의 간극을 두고 건축되는 두 집장사 집을 비교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1930년대 집장사들에 의해서 집중적으로 보급되었으면서도,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보호해야한다고 합창하고 있는 행복한(?) 집장사 집이 있는 반면, 천덕꾸러기로 취급되는 오늘의 집장사 집이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이 금번 기획을 이끌어 낸 셈이다. 두 집장사 집 사이에 발생한 엄청난 인식의 차이는 왜 생긴 걸까? 또 다시 1950년, 70년이 지나면 다세대주택을 보존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으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가?


1920년대부터 집장사들이 북촌의 경사지와 빈 땅을 정지하고, 몰락한 반가의 대형 필지를 구입해 잘게 나누어, 새롭게 형성된 중산층들의 구미에 맞게 꿈에 그리던 양반동네에 기와집을 근대적인 삶에 맞게 개량하여 공급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조선개국이래 사대부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왔던 북촌의 양반들은 ‘북촌 망국론’을 들먹이며, ‘이제 더 이상의 북촌은 없다’며 그러한 세태를 한탄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뜻있는(?) 사람들이 다세대주택의 난립을 한탄하듯이...
우리가 보호하지 못해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북촌이 ‘북촌 가꾸기’를 통해 안정적으로 우리의 이웃으로 남을 수 있는 성과를 거둔 것은 개발의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참신한 성공담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우리 건축인들은 북촌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1970여 년 전 우리 건축가들은 북촌의 개량한옥을 필두로 서울시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었던 집장사 집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졌었을까? 직접적으로 개량한옥에 대한 평은 남아있지 않지만, 삼청동의 절경이 축대를 쌓아 정지되어 개량한옥 주거지 개발되면서 야기되었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신문기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고, 당시 식민치하에서 우리건축의 미래를 짊어졌던 건축가들은 전통건축의 비기능성과 비위생성을 비판하는 한편으로, 국적 없는 양식건축의 난립을 개탄하면서, 나름대로의 우리주거의 전형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을 건축가 박동진의 ‘조선주택개혁론’과 ‘우리주택에 대하야’(동아일보 1921.3.4 - 4.6) 그리고 박길룡의 ‘유행성의 소위 문화주택’(조선일보 1930.9)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으며, 당시 주택청부업자였던 정세권의 한옥의 비경제성 비판과 홍석후, 김유방 등이 이상적인 우리의 주거모습을 그리고 현실을 진단하고 각종 제안들을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하기도 했다.
1920년대와 30년대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와 건축계의 화두는 ‘주택개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논의가 있었고, 일부에서는 실천적인 방안들이 제시되기도 했었다. 당연히,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요구가 당시의 주택건축에 반영되어졌을 것이다.
근대적 건축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은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며 우리주거의 미래상을 그리면서, 계몽의 의무감과 함께 자신들의 건축 작업을 해나갔을 것이고, 북촌을 중심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던 집장사의 ‘개량한옥’들 역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면서 지어졌을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 결과의 판단은 오늘의 우리가 이들 건축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에 대해서 명확해진다. 우리 건축계는 지난 10여 년 동안 북촌에 매료되었었다. 아직까지도 북촌은 건축을 시작하는 초년생들은 물론 기성건축가들도 끊임없이 방문하고, 자신의 작업 속에서 북촌을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성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집장사의 ‘개량한옥’ 동네가 건축가의 작업에 대해 한판승을 거두었다고 평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필자는 우리의 선배건축가들이 만들었던 근대주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다는 건축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북촌의 도시형 한옥은 지난 한 세기 우리가 이룩한 도시주택에 관한 건축작업중 단연 돋보이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북촌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북촌 가꾸기 기본계획’에서 밝히고 있는 북촌의 가치와 잠재력은 왜 우리가 북촌에 주목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며, 북촌의 가치가 건축적 가치에서 발원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북촌 가꾸기 기본계획’에서 “북촌은 경복궁, 청덕궁 양궐 사이에 자리한 위치적 특성으로 인해 조선시대이후 고급 주거지로서의 자긍심을 이어왔고, 지역내부는 물론 가까운 주변지역에 많은 역사적, 문화적 장소와 유산들이 자리하고 있어 서울의 대표적 역사, 문화명소라 할 수 있다. 특히, 북촌의 한옥은 한 채 한 채의 문화재적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20세기 초반의 서울의 도시주거형태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명력이 있는 주거공간으로서의 한옥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북촌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북촌을 만들어낸 주체는 누구인가? 적어도 소위 엘리트건축가들의 작업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필자의 관심은 이 부분에 있다. 건축행위는 분명 전문적인 행위이고, 그래서, 근대적 건축학습을 통해서 양성된 건축인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보편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북촌의 결과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 근대건축의 선구자였던 박길룡과 박동진을 비롯한 선배건축가들의 주택작업에 주목한 적이 있는가? 우리 선배의 건축작업들이 석?박사논문을 통해서 학술적으로 조명된 적은 있지만 북촌의 개량한옥처럼 건축가나 일반시민들의 애정 어린 따뜻한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은 분명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고등교육을 받은 당시의 엘리트였고, 누구보다도 많은 근대적 건축지식을 가지고 역사에 남을 만한 건축활동과 작품을 남겼음에도, 우리의 삶과 가장 밀착되어있는 도시주택에 대해서는 후학들의 모범이 될만한 건축작업을 만들어 내지 못한 셈이다. 물론, 우리의 식견 부족으로 그들의 성과를 읽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건축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로서는 전자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건축가들이 놓쳤던 그 무엇을 당시의 집장사들이 성취하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건축가들이 놓쳤던 그 무엇이 ‘이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필자의 연구가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했지만,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선배 건축가들이 근대적 건축학습을 통해서, 서양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우리 것을 개량하고자 했다면, 근대적 건축학습을 받을 수 없었던 집장사들은 우리의 삶과 전통적인 건축행위에 기초를 두고 서구의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다시 본 기획의 주제인 다세대주택으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세칭 건축가들은 물론 당대 건축담론 매체인 건축언론에서도 구청 앞의 허가방으로 불리는 건축설계사무소와 집장사들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눈길을 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경멸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그들은 분명 우리사회에서 요구하는 건축행위 중 물량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은 1970년 전 북촌의 집장사들이 받고 있는 오늘의 평가로 위안을 삼아야할 듯하다.
물론, 당대의 다세대 주택은 1970여 년 전의 개량한옥과는 다른 사회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당시의 한옥은 중산층 도시민들이 누구나 갖고 싶어 했던 드림 하우스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일단 구입하면 평생 지니고 살집으로 선택되었지만, 오늘의 다세대주택은 급상승하는 아파트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는 서민들이 2차적으로 선택하는 집이며, 이를 구입하는 사람들 역시 다세대 주택이 자신들과 평생을 함께 할 주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절대 다수가 그곳에 거주하고 있고 수요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세대주택을 건설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수요자 측의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분양에 따르는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임대와 분양이 가능한 수준에서 적정 공사비를 선택하기 때문에 다세대주택이 건축되는 주거지의 환경을 보다 열악하게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유지관리차원에서도 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이러한 다세대주택의 존재는 매우 자연스러운 시장경제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객관적인 상황이 열악하고 당분가 나아질 가능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에, 도시계획전문가들은 다세대주택을 도시개발 실패의 전형으로 꼽는다. 이는 단독주택, 불량주택을 개별적으로 증?개축하면서 도로, 주차장, 공원 등 생활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세대 주택은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다세대주택은 강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위 근로자의 집단거주지인 벌집이 가득했던 구로 3,4동 일대에도 있고, 언덕빼기 동네에도 구석구석 들어서 있다. 아파트는 번듯한 대지조건이 형성되어져야만 건축될 수 있는데 반해, 다세대주택은 몸집이 가벼워 30평 남짓의 작은 필지에도 얼마든지 비집고 들어가 자리 잡는다. 가히 다세대 주택의 생명력에 감탄할 뿐이다. 이 정도 강한 생명력과 적응력을 지닌 공동주거유형이 있을 수 있을까? 본 기획을 통해서 이를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촌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었어야 했을까? 필자는 북촌의 도시형 한옥을 통해서 우리시대의 엘리트 건축가들이 ‘집장사 집을 더 이상 천덕꾸러기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건축가들이 언제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도시주택의 전형을 만들어 본 적이 있던가? 건축가라면 누구나 만들고 싶어 하고 그것을 지향하면서도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로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교훈을 북촌의 집장사 집에서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북촌의 집장사들은 당대의 건축가들이 놓친 무엇을 찾아내었기에 오늘날 그토록 모두가 보존하고자 했던 도시형 한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할 것이다.


본 기획은 다세대가 갖고 있는 문제에 주목하기보다는 다세대주택을 우리시대의 도시주거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다음과 같은 목적 하에 마련되었다.
첫째, 다세대주택의 건축은 도시조직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했다. 다세대주택은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뿐 아니라, 자연발생형 주거지에도 지어지고 있다. 두 지역에서의 도시조직변화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비교적 여유 있는 필지의 단독주택에서는 단독으로 다세대주택이 지어지지만, 작은 필지가 밀집한 자연발생주거지에서는 합필에 의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 오랜 세월 버텨온 필지 구조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남서울 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된 강남의 경우는 관 주도의 개발을 통해서 분양된 단독주택지구가 거주민의 자체적 발의에 의해 각자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계획지구에서 자연형지구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가지고 그 기초작업으로써 서울 대치 4동의 주거블록을 사례로 주거유형분포조사를 실시하였다.
둘째, 도시주거의 새로운 전형으로 자리 잡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들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들의 작업 속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보다 진지한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건축가들은 우리의 도시주거형성의 당위적 주체로 인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의 작업이 우리 도시주거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예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다세대주택의 문제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지만, 현실문제에 대한 실천적 대안을 내놓고 있지도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 동안 다세대 주택에 대해서는 비정상적인, 파행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이러한 수식어는 다세대주택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필자는 다세대주택을 한국적 사회구조에서 발생한 극히 정상적인 주거유형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지의 유형에 관계치 않고 지어지는 다세대주택은 다양한 필지 조직에 적응하여 나름대로의 형태를 갖춤으로써 거칠지만 나름의 해법들을 만들어 내고 있고, 그 중에서 잘 만들어진 해법은 일반화의 경향까지 가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시건축과 일상건축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작업을 하는 몇몇 건축가들의 경우 바람직한 해법을 만들기도 하지만, 간헐적으로 나오는 그들의 해법이, 저렴한 설계비로 인해 시간에 쫓겨 단시간에 만들어내지만 물량 면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면서 건축주의 각종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 집장사 집의 다양한 해법의 합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수사로 치장되지도 않고, 진솔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담지는 못하지만 다양하게 지어지는 그들의 작업에 보다 진지하고 애정을 갖고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당대의 건축가들이 주목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평가받고 있는 북촌의 도시형 한옥을 보면서, 건축가들의 작업은 역사 한편으로 밀려나 있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다세대주택이 훗날 이 시대의 가장 소중한 도시주택의 자산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북촌이 건축인들에게 주는 교훈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상의 문제제기 같은 생각으로 본 기획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필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해, 좋은 기회를 소진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게스트에디터의 능력과 게으름 탓이기도 하지만, 다세대주택의 주 공급자들의 협조를 유도하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쪽의 기획이 되었지만, 보다 긍정적으로 다세대주택을 바라보고 배우는 자세가 함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건축문화 20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