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자료실
송인호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조경학부
건축문화 9107의 가회동11번지 주거계획 특집 ![]()
「가회동11번지 주거계획」은 북촌의 한옥보존지구 해제에 즈음하여 건축가 여섯 사람이 중앙고등학교 정문에 인접한 한옥주거지 11채를 철거하고, 대지를 합필하여 소위 빌라형식의 도시집합주택을 제안하는 프로젝트였다. 각 건축가들은 각자 모두 19세대의 집합주택를 제안하였다. 가회동 동사무소에서 전시회가 있었고, 재동초등학교 강당에서 계획안 설명회가 있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건축가들이 공공적인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는 점, 그리고 역사와 도시의 연장선상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건축계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만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계획안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건축가들의 철학과 열정, 그리고 계획안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오직 낡은 한옥을 부수고 새 양옥을 지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개발이익에 대해서 관심을 나타냈다. 골목길, 마당, 기억, 공동체와 같은 단어들은 주민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셋집을 놓을 수 있는지, 시에서 공동주차장을 마련해 줄 계획이 있는지, 공사비 융자나 보조가 얼마나 가능한지, 주민들의 관심과 질문은 그러한 사항에 집중되었다. 그러다가 설명회가 끝날 무렵 당시 종로구 국회의원이 단상에 올라왔다. 한옥보존지구의 해제가 ‘주민투쟁의 성과’이고 ‘자신의 정치적 업적’임을 선전하고, 열성지지자들의 구호에 둘려 싸여 단상을 내려갔다. 북촌 한옥은 아직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사회적이며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문제였다.![]()
한옥보존지구의 실패
서울의 북촌은 ‘역사도시의 보존과 재생’이라는 주제의 중심에 있어왔다. 조선의 양궁궐 사이에 있으면서, 현대 서울이 급격하게 변해 가는 와중에도 그나마 옛 서울의 역사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1970년대 후반 휘문고등학교, 창덕여자고등학교 등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자리에 현대건설사옥과 헌법재판소와 같은 거대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한옥기와지붕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모여 이룬 도시경관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재벌과 정부, 자기들은 이처럼 폭력적으로 역사도시를 파괴하면서, 한편으로는 가회동 삼청동 안국동 원서동 소격동 사간동 송현동 재동 화동의 북촌 지역을 1983년 7월 ‘집단미관지구’로 지정하고 다시 1984년 4월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하게 된다. 공공투자나 별다른 혜택도 없이 이 지역 한옥들의 증개축은 엄격히 통제되었고, 신축 건물 역시 건축심위위원회의의 심의를 거쳐 전통한옥양식을 모사하도록 규제되었다.
그리고 서울시는 북촌 지역에 대하여 1985년 「한옥지구 도시설계」, 1991년 「전통문화지대 복원·정비실시계획안」, 등의 연구를 통하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나 그 때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북촌의 한옥들은 점점 노후화되었고, 엉뚱한 콘크리트 한옥들이 건설되면서 도시경관은 점점 천박하게 바뀌어갔다. 급기야 홍수로 불량한옥이 무너져 내리면서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주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여 서울시는 한옥보존지구를 전면해제하기에 이른다.![]()
앞서 「가회동11번지 주거계획」은 한옥보존지구의 해제에 즈음하여 기획된 이벤트였던 셈이다. ‘이제 한옥을 부수고 새로 주택을 짓게 될 텐데, 마구잡이로 짓지 말고 전통을 생각하고 동네를 염두에 둔 아름다운 집을 지읍시다’라는 캠페인과도 같은 전시회였다. 전통적인 도시조직과 도시경관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도시주거건축유형을 제시하고자했던 여섯 건축가들의 작업은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건축 능력에도 불구하고 ‘북촌의 한옥마을’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도 못했고, 북촌 한옥마을이 가야할 방향을 예시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은 급속한 속도로 무너졌고, 그 자리는 조악한 다세대주택으로 채워져 갔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잇는 넓은 길이 북촌의 허리를 끊고, 가회로도 4차선으로 넓혀지고, 북촌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져갔다.![]()
살고싶은 북촌, 찾고싶은 북촌 구상
현재 시정개발연구원에서 연구진행중이고 동시에 서울시 북촌사업반에서 시행중인, ‘북촌 한옥마을 만들기’과제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북촌의 한옥마을에 대한 새로운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한옥보존지구 해제 투쟁을 주도했던 주민 조직 ‘북촌가꾸기회’에서 1999년 서울시장과의 대화를 통하여 거꾸로 북촌한옥마을의 보존과 재생을 위하여 서울시의 관심과 정책수립을 요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85년 1500여동이었던 한옥이 이제 800여동으로 줄고, 한옥이 헐린 자리에 4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면서 도시경관이 흉해지고, 주거환경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열악해졌다. 한편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면 IMF 금융위기로 인하여 한옥을 부수고 다세대주택으로 개발했을 때 예상되는 이익도 신통치 않았다. 이제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주거환경훼손의 폐해를 주민들이 자각하게 되고, 개발이익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면서, 비로소 뜻있는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북촌 한옥마을이 갖고 있는 역사도시경관으로서의 가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게 된 셈이다. 그러한 와중에 2000년 2월 주거환경사업지구로 지정되어있던 가회동1번지의 한옥 수십 동이 하루아침에 헐려나가면서, 서울시에서도 이대로 방치하면 북촌 한옥마을은 영영 돌이킬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과도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 ‘북촌한옥마을 만들기’ 과제의 초점은, ‘한옥등록제’와 ‘보전재생을 위한 개보수공사비 지원’, 그리고 ‘한옥매입과 활용’이다. 현재 진행중인 이 연구는 기존의 연구와 정책과는 몇 가지 점에서 시각과 전략을 달리하고 있다.![]()
1984년 한옥보존지구지정에서 1991년 한옥보존지구해제에 이르는 일련의 정책과 연구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는 주민들의 마음이다. 한옥보존지구정책은 주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여 실패한 것이다. 북촌의 주민들은 역사환경의 보존이라는 명제아래 일방적으로 희생을 감수할 것을 요구받아왔다. 강남의 아파트 사는 서울시민들은 점점 잘 사는데, 서울의 자랑이라고 하는 북촌 한옥에 사는 서울시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강남과 편차만 커지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라서 희생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북촌의 한옥은 역사적인 공공재산이기에 앞서 개인의 사적재산임을 간과하고서는 북촌 한옥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한옥등록제’는 “한옥에서 살고 싶다”라는 주민의 자유의사에 따라 한옥으로 등록하게 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등록한 한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을 주고,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북촌한옥마을’의 성패를 주민의 결정에 맡기고, 서울시는 이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을 하면 된다. ‘한옥등록제’는 큰 전환이다. 한옥에 사는 북촌주민의 마음을 움직여서, 한옥을 보존하고 재생해 가는 정책이다.![]()
둘째는 한옥의 생명력이다. 앞서 한옥보존지구정책은 북촌의 물리적인 역사도시경관을 보존하자는 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그것은 마치 민속촌과 같이 지역을 한정하거나, 연출하고자하는 의도를 바탕에 깔고 있다. 북촌지역 전체를 ‘한옥보존지구’로 묶고 ‘전통양식 재현을 위한 지침’으로 통제하거나, ‘역사적인 도시경관의 보존’을 위하여 일부 지역만을 보존지구로 축소하고 이 지역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겠다는 구상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촌은 남산 한옥마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촌의 한옥은 사람들이 ‘사는 집’이고, 북촌 마을은 그 장소에서 지형과 더불어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북촌 한옥에 대한 정책과 연구의 목적은 ‘한옥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한옥은 잘 쓰여질 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한옥을 부수고 양옥 짓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비로소 역사도시경관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옥개보수공사비 지원’은 한옥의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 공공자금을 개인에게 지원하는 정책이다. 한옥을 개보수하는 비용을 지원하여 ‘한옥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현대적인 삶과 여유를 생산할 수 있는 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다. 한옥지붕과 안마당, 길에 면한 한옥의 외관을 개보수하는 비용은 서울시에서 일정 부분 보조한다. 시민들은 도시의 역사적 경관을 향유하는 일정한 대가를 세금으로 치는 셈이다. 서울시는 한옥 내부를 개보수하는 공사비용을 무이자로 융자해준다. 한옥에서 편리하고 지혜롭게 이용될 때, 한옥의 외관도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북촌의 역사적인 도시경관’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한옥 또는 대지를 구입한다. 그 한옥들은 주민들이 공유하는 시설, 한옥의 안마당과 내부를 개방하여 시민들이 온전하게 이 지역을 체험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시설, 북촌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시설로 사용하도록 한다.![]()
북촌의 한옥은 어떠한 모습으로 현대 서울에서 그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한옥의 구성과 아름다움에 기대어 지혜롭게 쓸 수 있는 몇 가지 모습을 상상해보자. 강남의 딱딱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이곳 북촌의 한옥에 와서 하루 자면서 한옥동네와 안마당과 온돌과 마루를 체험한다. 민속촌과 같은 연출된 도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동네와 집의 체험이다. 어느 한옥은 한지공예를 하는 전통장인의 집이다. 장인은 대청에 앉아서 전통공예품을 만들고 있고, 그가 만든 물건은 문간채에 전시되어있다. 한 건축가 한옥을 고쳐서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젊은 후배 건축가들과 함께 설계작업을 진행하고, 찾아온 외국건축가와 프로젝트를 협의한다. 어느 한옥은 한 교수가 평생 모아온 소장품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어느 한옥은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을 위한 김치 담그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관광객들은 일박이일로 이 한옥에 머물면서 김치를 담그고 그것을 포장하여 집으로 가져간다. 어느 한옥은 서예와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이다. 아이들은 이 한옥에 와서 글을 배운다. 이러한 한옥 사이사이에 다른 한옥들은 작지만 여유로운 살림집이다. 이 한옥들은 그냥 살림집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또 조금은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서서히 바뀔 수도 있다. 그밖에 한옥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생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어떤 기능은 서울시에서 한옥을 사서 마련해주면 좋을듯하고, 어떤 기능은 안목 있고 뜻 있는 개인이 한옥을 사거나 임대하여 운영하면 좋을 듯하다. 경제적으로 이문을 남길 수 있는 기능도 있고, 역사문화교육의 차원에서 일정 부분 공공에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모양의 한옥들이 제각기 적절한 방식으로 재생되고, 그것들의 관계망이 짜여지면서 북촌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산된 공청회와 새로운 힘
그런데 2000년 10월, 계동 1번지 중앙고등학교의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촌 한옥마을가꾸기’에 대한 공청회는 일부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한옥보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공청회에 참석하려는 주민들이 입장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시정개발연구원의 연구진을 몰아세우면서, 서울시의 정책을 규탄하고 주민들을 선동하였다. 한옥보존을 반대하는 주민과 우호적인 주민들 사이에 깊은 골이 생기고, 각자 가슴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흩어 졌다. 주민들이 서울시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또한 주민들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고 충동적이어서 이 북촌 작업은 믿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진행해야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최근 1~2년 사이에 북촌 한옥마을의 보존과 재생과 관련하여 고무적인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주민들의 인식변화와 시민들의 참여이다. 주민들의 조직인 ‘북촌가꾸기회’는 한옥보존재생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일부 주민모임과 갈등관계를 갖고는 있으나, 서울시의 북촌가꾸기 사업에 대하여 주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전국에 방치되어있는 한옥을 되살리는 운동을 해오고 있는 ‘한옥 아낌이 모임’ 회원들은 가회동31번지일대의 한옥들을 여러 채 구입하여 한옥매입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북촌의 주민들과 전통 장인들의 모임인 ‘한옥을 사랑하는 모임’에서는 한옥을 아름답게 활용하는 프로그램에 대하여 구상하고 이제 실천을 시작하고 있다. 한편 건축역사학회와 문화재기술인협회 등에서는 설계와 기술에 대한 자문을 자임하고 있다. 한편 북촌에 살고 있으면서 한옥을 잘 고치는 선례를 보여준 몇몇 건축가의 활동도 활발하다.![]()
역사도시 북촌의 보존과 재생이라는 목표는 우선 주민의 마음과 시민들의 동의를 얻고, 한옥의 구성과 아름다움에 기대어 지혜롭게 사는 방식을 제안하는 전문가와, 소명의식과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을 추진해 가는 서울시가 합력함으로써,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이다.
출처:건축문화 2001년 6월호